핀터레스트에만 의존하는 디자이너들
당신은 게으른 디자이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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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unsplash
새로운 디자인 프로젝트를 위한 영감을 찾거나 디자인의 방향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아 핀터레스트부터 찾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료 디자이너와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에도 핀터레스트 속의 이미지들을 모아둔 무드 보드를 기반으로 공유하는 것도 일상화되었죠. 혹시 핀터레스트가 '내가 딱 원하는' 이미지를 보여줄 때까지 ‘우연의 발견’에 기대게 되어버리고 있지는 않나요? 핀터레스트 자체를 비판하려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처럼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무드 보드들과 아이디어들을 벽에 가득 채워 넣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특정 환경과 패턴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책 속의 글귀, 스케치, 순수예술 작품 등 영감을 일으켜 줄 만한 그 모든 것들로 벽을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동료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방향을 찾아나갑니다. "영감을 찾는 것은 노동이다"¹라고 할 만큼 완벽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해 줄 다양한 매체의 레퍼런스들을 모으는 것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고맙게도 핀터레스트는 어떤 레퍼런스를 찾아야 할까 고민하기도 전에 내가 찾고자 하는 영감들을 웹의 세계에서 모두 긁어모아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그 “위대한 ‘정보의 민주화'는 우리 모두가 같은 레퍼런스 속에서 동일한 영감을 사용할 운명”²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에 매년 ‘트렌드'가 생기는 이유,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브랜드들의 웹사이트, 포스터, 소셜 콘텐츠, 공간 인테리어 등이 독보적이기보다 모두 비슷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힌트, 비슷한 디자인
‘아이들을 위한 컵’의 디자인을 의뢰를 받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먼저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유아 컵’을 검색하게 됩니다. 핀터레스트가 제공하는 수만 개의 연관 이미지들을 둘러보며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운이 좋으면 괜찮은 영감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핀터레스트가 제공하는 연관 이미지들을 보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디자이너가 같은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고 동일한 이미지들을 핀터레스트에서 수집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경험담으로, 회사 내에서도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팀 멤버들과 무드 보드를 공유하면 ‘핀터레스트에서 많이 본’ 비슷한 이미지들을 모아 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겹치는 이미지를 가져올 때도 있죠. 동일한 이미지를 가져오게 되는 이유로는 핀터레스트의 비주얼 서치 툴은 이용자가 많이 클릭하고 수집한 이미지들을 우선시 모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이 툴만 비판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검색을 할 때에도 프로젝트와 직관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키워드를 서치할 뿐 나만의 관점으로 테두리 밖을 넘는 키워드를 검색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³ 핀터레스트에서 반복적인 이미지를 보고 있지는 않나요? 과연 우리는 핀터레스트가 ‘알아서’ 큐레이션 해주는 이미지들과 연관 키워드에 익숙해지지는 않았는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자이너’ 본래의 역할
핀터레스트와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다양한 콘텐츠들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진 만큼 ‘이미 인정받은 스타일,’ ‘멋있어 보이는’ 스타일에 더 쉽게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클라이언트가 직접 핀터레스트에서 무드 보드를 만들어서 “이것처럼 해주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어느 순간 많은 이들이 좋아해 주는 특정 디자인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디자인’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디자인에서 이런 요소를, 저 디자인에서 저 요소를, 쇼핑하듯이 이것저것 끌어다가 짜깁기하는 간편한 과정에 익숙해져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다른 디자이너의 창작물을 통해 많은 배움과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나에게 영감을 준 해당 디자이너의 관점이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나의 생각이 갇혀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속의 이미지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릴 뿐만 아니라 그 의미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우리는 그것의 개성을 침묵시키고 그만의 특별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Thierry Burnfaut
뉴욕의 디자인 에이전시 Base Design의 파트너 Thierry Brunfaut는 디자이너들이 ‘마약’과도 같은 핀터레스트에만 의존하여 ‘Photocopier’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이것처럼 해주세요'라며 다른 디자인물의 예시를 요구하는 행위 또한 수많은 브랜드와 다를 바 없는 복제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⁴고 말합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추상적인 환상 속에서 디자인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창의적인 답을 내놓는 것"⁵이라고 말하며 스크린 속의 세상에서 벗어나 일상 속 향기, 소리, 사람과의 대화, 마법 같은 매일의 순간들 속의 영감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핀터레스트와 인터넷의 보급화 이전의 디자이너들은 Thierry Brunfout가 제안하는 이 방법이 더 익숙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시대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많은 디자인 방법들이 탄생했으며, 한 디자이너가 소화해내야 하는 프로젝트의 개수는 늘어났고, 각 프로젝트에 소요할 수 있는 여유는 짧아졌습니다. 그만큼 ‘빨리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는’ 방법에 우리가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디자인 회사와 클라이언트 모두 디자이너가 스크린 속의 세상만이 아닌 다양한 곳으로부터 영감을 가져올 수 있도록,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제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관대한 시선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혼돈, 관대함, 그리고 모순 속에서 탄생한다.”
-Thierry Burnfaut
디자인을 진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조금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미 좋아 보이는 것’을 빌려오면 못해도 대부분 평균은 하기 때문이죠. 하라 켄야의 말 그대로 디자이너 스스로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감성과 통찰력을 갖추지 않으면 디자이너가 사회에서 짊어지고 나가야 할 본래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말 것”⁶입니다. 우리 모두 나만의 자세로 디자인을 파고든다면 핀터레스트가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절대 던질 수 없는 질문들을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용 출처
¹⁻⁵ Brunfaut, T. (2019, December 16). The Pinterest effect. Medium. Retrieved April 1, 2022, from
https://thierrybrunfaut.medium.com/the-pinterest-effect-684aa9a076b8
⁶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안그라픽스, 2007), p.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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